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로쿠의 변 (문단 편집) == 평가 == 결과적으로 미요시 가문에 있어서는 정말 최악의 한 수가 되었다. [[쇼군]]을 살해하는 것까진 좋았지만 이후 [[미요시 요시츠구|요시츠구]]가 가신단 컨트롤을 전혀 하지 못한데다 이로인해 [[마츠나가 히사히데|히사히데]]가 떨어져 나가고 자신의 모토도 박살이 났으니 요시츠구 입장에선 정말 일이 완전히 꼬여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모로 [[무로마치 막부]] 후기의 혼란함을 대표하는 사건 중 하나. 쇼군의 사망도 그렇고 [[오다 노부나가|노부나가]]의 상락도 그렇고, 여러모로 스펙타클한 아시카가 가문 후기 역사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이다.[* 무로마치 후기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정리해보면 [[오닌의 난|후계자 문제로 고위 임원들이 서로 들이받질않나]], [[호소카와 마사모토|싸웠던 임원은 쇼군을 폐립시키고 양자만 세명을 데려와 카오스를 열질않나]], [[미요시 모토나가|카오스를 틈타 새로운 중앙 정권을 세우는 인간이 있질않나,]] [[미요시 나가요시|그 아들 놈은 진짜로 막부를 때려 부수질않나]], [[미요시 요시츠구|겨우 자리잡았더니 이번엔 그 후계자가 때려 부수질않나]], [[오다 노부나가|이젠 도와준 녀석이 뒤통수를 후려갈겨 막부를 멸망시켜버리질않나...]] 여러모로 정말 혼란한 시기였다.] 사건을 결행시킨 요시츠구는 당시 10대 중반 쯤의 나이였다. 초창기에는 히사히데가 진정한 주모자라고 알려졌으며 덕분에 히사히데를 다루는 매체에선 빼도박도 못하게 그의 독단이라고 설명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로인해 히사히데의 이미지는 악독한 인간으로 정착해버렸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로 '''이 사건에 히사히데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들 히사미치가 사건에 크게 관여했기 때문에 히사히데가 암묵적 동의를 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는 학자 분들도 있긴하다.] 사건 당시 히사히데는 [[야마토]]의 군단장을 맡아 정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현재 히사히데가 상락했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만약 이 사건의 주모자가 히사히데라면 쇼군을 죽이는 거사에 병사만 보내놓고 자기는 본거지에 박혀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또한 쇼군 살해이후 히사히데는 자신의 주가와 싸웠으면 싸웠지 자기가 쇼군을 새로 옹립하지도 않았고 쇼군을 웃도는 세력에도 붙지않았다. 히사히데와 쇼군은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았으며, 생각보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였다. [[미요시 요시오키|요시오키]]와 함께 오토모슈를 맡아 미요시 가문과 쇼군 가문의 외교 관계를 책임졌으며 요시테루가 살해당하자 동생인 요시아키를 유폐시키고 "목숨을 뺏지 않을 것이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